나는 경기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17학번이다.

 

지금은 독일에서 개인사업자를 내고,

게임을 포함한 여러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어 출시하려고 하고 있다.

 

당장 첫 게임인 Quirky Ball도 사실상 개발을 끝내고,

사업자 등록과 양대 마켓 결제 테스트를 진행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런데 웃긴 건,

나는 원래 개발자가 될 생각도 없었고, 게임을 직접 만들 생각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했던 일들이 전부 여기로 연결되어 있었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환경이 자주 바뀌었다

나는 유년기부터 환경이 꽤 자주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곳에서

오랫동안 깊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았다.

 

좋게 말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익숙해졌고,

나쁘게 말하면 어디서든 알아서 살아남는 법을 조금 일찍 배운 것 같다.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엄청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대학교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림 좀 그리고 내신 좀 챙겨서 경기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훗날 독일에 와서 게임을 직접 만들고,

사업자를 내고, 소프트웨어를 팔 생각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학생 때 비트코인을 보면서 처음 했던 생각

대학교 1학년쯤

비트코인이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내가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걸 보면서 느꼈던 건 다른 것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비관적으로 보이고,

내가 가진 게 별로 없더라도,

시대가 크게 변하는 순간을 잘 보고 준비만 되어 있다면

기존의 출발선 자체가 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

 

그때 처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원래부터 돈이 많고,

누군가는 좋은 환경에서 시작하고,

누군가는 나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시대가 크게 바뀌는 순간에는

모두가 처음 접하는 무언가가 생긴다.

 

그때 준비되어 있으면

나한테도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은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그리고 군대를 갔다

그러다가 군대를 갔다.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는데,

 

이번에는 코로나가 터져 있었다.

세상이 또 한 번 완전히 바뀌었다.

 

락다운이 걸리고,

사람들은 밖에 나가지 못하고,

모든 게 이전과는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불안한 시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때

"세상이 이렇게 크게 바뀌는데, 여기에도 뭔가 기회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한 번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어쨌든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해보자는 식으로 살았다.


함께 게임을 즐기던 학우들과 보드게임까지 만들었다

나는 원래 오버워치 같은 게임을 굉장히 좋아했다.

 

게임 자체도 좋아했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게임하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같은 학교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어쩌다 보니 그들과 보드게임까지 만들게 됐다.

그리고 실제로 펀딩까지 진행했다.

 

놀랍게도 펀딩은 성공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도 꽤 중요한 경험이었다.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과,

실제로 하나의 제품을 기획해서 만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돈을 받고 판매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 경험이 나중에 어디에 쓰일 거라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았다.

그냥 재미있어서 했던 것이다.


그 보드게임이 게임회사 취직으로 연결됐다

그런데 그 경험이 그대로 이력서가 됐다.

게임을 좋아했고,

직접 게임을 만들어봤고,

 

펀딩까지 해봤다는 경험이

게임회사 입장에서는 나름 재미있게 보였던 모양이다.

운도 좋았다.

 

그렇게 게임업계에 취직했다.

처음에는 QA였다.

 

N사를 시작으로 중견기업과 스타트업까지 꽤 다양한 규모의 회사에서 일했다.

경력 자체는 약 3년 정도로 아주 길지는 않았다.

 

다만 짧은 시간 동안

여러 회사와 여러 환경을 경험했다.

사람이 많은 조직도 있었고,

사람이 부족한 곳도 있었고,

직무가 칼같이 나뉘어 있는 곳도 있었고,

사람 한 명이 여러 일을 동시에 해야만 굴러가는 곳도 있었다.

 

유년시절 환경이 계속 바뀌었던 나에겐

이는 부담보단 재미있는 로그라이크 게임을 해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직에는 더 높은 연봉과, 새로운 동료와 일들이 찾아왔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정말 테스트만 했다

처음 QA를 시작했을 때는

말 그대로 블랙박스 테스트 위주였다.

 

기획서가 있으면 기획서를 보고,

기능이 구현되면 명세에 맞는지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버그를 등록하는 식이었다.

 

QA라는 직무의 기본은 결국 검증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바꾸는 게 아니라,

주어진 명세가 제대로 구현됐는지를 최대한 철저하게 확인하는 일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내가 게임 하나 만들어야겠다."

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개선안을 이야기할 기회는 있었지만,

결국 QA에게 게임의 방향 자체를 결정할 힘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맡은 영역에서 최대한 문제를 잡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회사가 바뀔수록 만지는 게 많아졌다

경력이 쌓이고

회사가 바뀌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특히 스타트업 같은 환경에서는

사람 한 명이 한 가지 일만 하고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이 부족한데 어떡하겠는가.

 

안 하면 게임이 안 나온다.

그리고 눈치를 준다.

집에 못 간다.

결국 해야 한다.

 

그래서 엔진도 만지고,

데이터 테이블도 보고,

로그도 보고,

개발 과정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시간 안에 더 많은 테스트를 해야 했기 때문에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것저것 직접 만질 수밖에 없었다.

기획자 출신이 아닌사람이 대충 휘갈긴 기획서와

그걸 명세로 파악하고 대충 개발해놓은 소프트웨어를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검증해야했다.

빌드는 1주일에 1~2번..

 

살기 위해 배웠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여기에 산업디자인 전공도 은근히 도움이 됐다.

 

인터페이스를 보거나,

사용자가 어떤 흐름에서 불편함을 느낄지 판단하거나,

디자인 관련 문제를 이야기할 때 전공 지식이 꽤 자주 튀어나왔다.

 

나중에는 단순히 테스트만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기획부터 개발, 디자인 영역까지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혼자 여러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개발 QA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여러 게임을 출시하면서 책임감도 생겼다

QA로 일하면서

여러 게임의 출시 과정을 경험했다.

출시 전에 수없이 테스트를 한다.

 

테스트케이스도 만들고,

예외 케이스도 보고,

문제가 없는지 계속 확인한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출시 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버그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꽤 많이 반성했다.

"이걸 왜 못 봤지?"

"조금만 다르게 테스트했으면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책임감도 꽤 강해졌다.

QA를 오래 하면 자기가 많이 안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얼마나 많은 걸 놓칠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그 경험이 지금 개발할 때도 굉장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때도 내가 게임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당시에도 개발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게임을 직접 만들어서

회사를 차리고 싶다는 목표도 없었다.

 

오히려 회사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높은 직급에 있다고 항상 좋은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오랫동안 업계에 있었다고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반대로,

개인적으로는 다소 부족해 보였던 게임도

시장에서는 생각보다 매출이 잘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냥

"이 업계가 원래 이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내가 직접 해볼 생각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생각이 바뀐 건 독일에 오고 나서였다.


원래 해외생활에 대한 생각은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나는 98년생이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의문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지금처럼 계속 노동해서

주거,

생활비,

노후,

연금까지 감당하면서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까?

 

인플레이션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월급이 오른다고 해도 체감상 삶이 훨씬 여유로워지는 느낌은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외국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해외생활이라는 선택지를 마음속 한쪽에 봉인해두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러다 독일로 갈 기회가 생겼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와이프와

약 반년 정도 꽤 치밀하게 해외 이주 계획을 세웠다.

 

나는 당시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정규직 전환까지 확정됐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의 자금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결국 나도 퇴사를 해야 할 타이밍이 왔다.

 

그리고 참 묘하게도,

퇴사하기 약 2주 전에

와이프가 독일 회사 개발자로 최종 합격했다.

 

결과적으로는 웃으면서 퇴사했다.

살다 보면 타이밍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그렇게 2025년,

결혼하고 독일로 넘어왔다.


독일에 오면 독일어 배우고 QA 하면 될 줄 알았다

처음 계획은 단순했다.

독일어 배우고,

독일에서 다시 게임 QA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채용공고를 찾아보니까

게임 QA는 영어만 요구하는 곳도 많았다.

 

"어? 그럼 독일어를 꼭 그렇게까지 잘해야 하나?"

 

싶다가도,

그래도 독일에서 살 거면 독일어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독일어를 계속 배웠다.

그러다가 독일의 직업훈련 제도도 찾아보고,

이것저것 다른 진로도 알아봤다.

 

독일군에서 정규 군인이 아닌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지도 찾아봤다.

 

정말 별걸 다 찾아봤다.

 

아무튼 당시에는 나도 앞으로 뭘 할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독일어는 재미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독일어 공부 자체는 꽤 재미있었다.

실력도 많이 늘었다.

중급 수준까지는 꽤 자신감이 붙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급 과정으로 갈수록 벽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어학원에서 배우는 언어와

현실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는 또 달랐다.

 

무엇보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외국어 공부에는 끝이 없다.

계속 공부하면 당연히 더 잘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평생 어학원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생활 자체도 모든 게 느렸다.

행정도 느리고,

일 처리도 느리고,

자동차를 사기 전까지는 이동조차 꽤 힘들었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기분 나쁜 일을 겪는 경우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경험 하나하나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웬만한 건 웃어넘길 정도가 됐지만.

반대로 독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공기가 좋았고,

한국과는 다른 특유의 정서적 여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나라 자체의

경제 체급에서 오는 여유라는 것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았다.

 

좋은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있고,

그렇게 약 1년을 보냈다.


그러다 바이브 코딩을 접했다

독일에 와서 이것저것

진로를 고민하던 중 바이브 코딩을 우연히 접했다.

 

AI를 이용해 코드를 작성하고,

직접 소프트웨어를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

 

AI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특히 개발업계에서는 굉장히 논쟁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는 이걸

위기라고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또 하나의 기회처럼 보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비트코인을 보면서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시대가 크게 바뀌는 순간이 또 온 것 같았다.


AI가 있다고 누구나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은 누구나 AI를 통해

어느 정도 코드를 만들 수 있다.

 

앞으로는 더 쉬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코드 한 줄을 작성하는 것과,

제품 하나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테스트하고,

출시하고,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게임회사에서

이 과정을 여러 번 경험했다.

 

디자인을 전공했고,

게임 QA를 했고,

엔진과 테이블과 로그를 만졌고,

여러 게임을 실제로 출시해봤다.

큰 회사도 다녀봤고,

중견기업도,

스타트업도 경험했다.

 

회사마다 개발 프로세스가 어떻게 다른지도 봤다.

무엇보다 출시하고 나서 문제가 터지는 것도 직접 봤다.

 

이런 경험은 AI가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AI는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경험을

실제 제품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장벽을 굉장히 많이 낮춰줬다.

 

나는 그 부분에서 꽤 큰 가능성을 느꼈다.


심지어 와이프도 개발자다

현재 와이프는 풀스택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개발하면서 기술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웃긴 건 나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게임 QA를 오래 해서 그런지

인터페이스나 사용성 문제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가끔은 현직 개발자인 와이프보다도

버튼 하나,

여백 하나,

사용 흐름 하나

가지고 내가 더 예민하게 굴 때가 있다.

 

결국 이것도 그동안 해왔던 경험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을 다시 보니까 다 이상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독일에서 1년 정도를 보내면서 내 인생을 꽤 많이 돌아봤다.

 

산업디자인.

게임.

보드게임 제작.

펀딩.

게임 QA.

N사.

중견기업.

스타트업.

기획.

디자인.

엔진.

데이터 테이블.

로그.

게임 출시.

블로그.

해외이주.

독일어.

독일 행정.

 

하나씩 보면 서로 별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혼자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직접 출시하고 운영한다."

 

라는 목표 하나를 놓고 보면 이상할 정도로 전부 쓸모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번 만들어봐도 되는 것 아닌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있다.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라고

항상 옳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높은 직급이라고 실수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조금 아쉬웠던 게임도

시장에서는 충분히 돈을 벌었다.

 

그걸 보면서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끝낼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게임도 사람이 만든다.

소프트웨어도 사람이 만든다.

 

그렇다면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Godot를 켰다

그렇게 공짜라는 Godot(고도)엔진을 설치하고

직접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다.

약 3주 정도 지나니 게임이 꽤 그럴듯한 완성도까지 올라왔다.

 

내가 과거 회사에서 출시했던 게임들과 개발속도와 퀄리티를 비교해도

"이 정도면 진짜 서비스해도 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결과물이 나왔다.

 

그 순간 확신이 생겼다.

이건 그냥 공부용 프로젝트로 끝낼 필요가 없겠다고.

진짜 출시해보자고.


첫 게임, Quirky Ball

그렇게 첫 게임 이름은 Quirky Ball로 정했다.

 

퍼즐게임이다.

 

현재는 사실상 게임 개발 자체는 거의 끝난 상태이고,

계속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에서 개인사업자 등록도 마쳤다.

현재는 Google Play와 App Store 출시를 위한

여러 서류 작업과 결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개발을 시작했을 때는 여기까지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쿼키볼 시연 영상

 


다만 첫 게임부터 아쉬운 점도 많다

첫 게임을 만들면서 느낀 점도 있다.

일단 나는 원래 퍼즐게임을 그렇게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직접 만들면서 장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많이 느꼈다.

 

게임을 완성했다는 사실과,

그 게임이 내가 앞으로 계속 만들고 싶은 게임이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방향을 바꿀 생각이다.

내 취향도 더 많이 반영하고,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도 더 많이 분석하면서 만들려고 한다.


게임만 만들 생각도 없다

House Duck은 게임만 만드는 이름으로 사용할 생각은 아니다.

 

개인사업자 상호이자,

앞으로 내가 만드는 여러 소프트웨어를 묶는 이름에 가깝다.

 

게임도 만들고,

앱도 만들고,

웹서비스도 만들 생각이다.

살면서 직접 불편했던 문제도 소프트웨어로 해결해보고 싶다.

 

게임은 재미를 만들어내야 한다.

반면 생활 속 문제는 이미 불편함 자체가 존재한다.

 

그 불편을 제대로 해결하면

그것 자체로도 제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크고 작은 게임뿐만 아니라,

실제로 내가 필요해서 만드는 소프트웨어도 계속 만들어볼 생각이다.


이 블로그에는 그 과정을 전부 남겨보려고 한다

이 블로그에는 앞으로 내가 직접

개발하면서 겪는 과정을 기록할 생각이다.

 

게임 개발일지도 쓸 것이고,

소프트웨어 개발일지도 쓸 것이다.

Google Play와 App Store에 실제로 게임을 출시하는 과정도 남길 생각이다.

 

독일에서 개인사업자를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개발하다 실패한 기능도,

잘못 판단해서 버린 아이디어도,

다 기록할 생각이다.

 

그리고 게임이 출시되면 다운로드 수도 공개하고,

가능하다면 매출도 실제 숫자로 공개해볼 생각이다.

 

잘되면 잘되는 대로 쓰고,

망하면 망하는 대로 쓰려고 한다.

 

성공한 결과만 모아서 성공한 척하는 블로그를 만들 생각은 없다.

애초에 아직 성공한 것도 없다.

첫 게임조차 아직 출시 전이다.

 

하지만 이미 차기작 2개와, 기타 서비스를 제작중에 있다.

 


차기작 2.5d 구현 프로토타입

 


쓸데없는 경험은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경험 중

당장 돈이 되지 않았던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것도 그랬고,

보드게임을 만든 것도 그랬다.

여러 게임회사를 옮겨 다녔던 것도 그랬고,

독일어를 배우면서 보낸 시간도 그랬다.

 

독일에 와서 시행착오를 겪은 시간도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굳이 왜 이런 경험을 해야 하나 싶었던 것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 경험들이 전부 데이터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데이터들이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비트코인을 보면서 했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가 아무리 힘들게 느껴져도,

준비된 사람이라면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던 경험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기회로 귀결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이걸로 경제적으로 성공해본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이 글은 성공담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다.

다만 한 가지는 믿고 있다.

 

쓸데없는 경험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살 생각이다.

 

계속 만들고,

계속 실패하고,

계속 배우고,

 

그 경험을 결국 수익으로 연결해볼 것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House Duck의 철학이다.